글로벌 인재 장학금 - 연구계획서
계획들 2009/06/26 23:48 |
연구계획서
1.
인류가 거대한 공룡이라면, 거대한 공룡의 머리는 21세기 초입에 들어섰지만, 꼬리는 19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꼬리는 짓이겨지며 흙투성이가 된 채 20세기를 넘어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공룡의 머리인 인류의 지성은 유전자 지도를 해석하며 동물들을 복제하는 최첨단의 길을 걷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피투성이가 되고 짓이겨진 19세기와 20세기의 파국들 - 양차대전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그리고 핵전쟁의 공포 - 속에 남겨진 꼬리가 아닐까?
2.
철학은 인간의 학문이자, 인간을 위한, 인간만의 학문이다. 그것은 철학은 지혜(Sopia)를 사랑(Philo)하지만 결코 지혜 자체가 될 수 없어서, 지혜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지칭하는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공허한 문자들의 향연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들의 근본 의지이다.
이러한 철학의 일면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철학자가 니체다. 니체는 본격적으로 ‘근대’라는 시대를 반성하고 ‘근대인’이라는 고대와 중세의 인간과 구별되는 인간들의 삶을 성찰했다. 니체에게 근대인은 평균화되고 왜소화된 모습이었으며, 자신을 보존하기만 할 뿐 극복하려하지 않는 불임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임의 인간들의 가치가 팽배한 시대가 바로 근대였다. 니체의 이러한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류의 지성은 탈근대를 논하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근대적인 의식과 제도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체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서양의 기괴한 철학자에게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인류라는 거대한 공룡의 꼬리 끝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3.
니체의 작업들은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형이상학적 측면과 윤리학적 측면에 집중된다. 니체는 기존의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진행시켜 왔다. 서구의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의 논점은 크게 1) 고정되고 단일한 자아Ich가 지속한다는 ‘믿음Glaube’ 2) 세계라는 전체 속에서 운동하는 어떤 내용들이 지속한다는 ‘믿음’ 3) 이러한 지속들에 대한 믿음은 ‘표상Vorstellung’이라는 인간의 불확실한 의식 활동에 의해 불변하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점 4) 마지막으로 이러한 표상활동을 통해 인간을 하나의 확고한 ‘주체Subjekt’로 상정한다는 점이다.
니체는 서구 형이상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텍스트의 문자로 남지 않고 인간의 삶을 해석하고 근거 짓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니체는 그것을 ‘가치’라는 개념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냈고 형이상학적 맥락에서 정식화된 가치들의 체계는 인간의 삶에서 ‘도덕’이란 형태로 인간의 삶을 규제한다는 것을 보였다. 즉, 신이라는 개념을 정점으로 구축된 도덕 체계 속에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해석하기 위한 근본 의지가 담겨있다. 니체는 이러한 의지를 ‘진리에의 의지Wille zur Wahrheit’라고 불렀고 인간이 자신의 삶을 보다 안전한 지반위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금욕주의적 이상Asketische Ideale’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금욕주의적 이상은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이다 왜냐면 늙은 신은 죽었지만 새로운 우상들을 섬기려 하는 인간의 나약한 자아의 흔적인 신앙심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몸과 몸을 통해 살아가는 대지위에서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질병에 빠져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니체는 ‘도덕을 미학으로 환원하기’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을 왜소하고 유약하게 만드는 도덕적 판단에 기저가 되는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미적으로 동등한 여러 가치 평가를 풍부하게 산출해내려는 의도를 가진 작업이다. 즉, 도덕적 인간이 아닌 미학적 인간, 도덕적 실존이 아닌 미적 실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니체의 형이상학과 도덕비판 그리고 도덕을 미학으로 환원한다는 새로운 계획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정리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논문으로 완결시켜 현재적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나의 연구 계획이자 목표이다.
4.
하이데거는 니체를 서구 형이상학의 완성이자 종말로 정의했다. 이러한 평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니체는 서구 철학사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의 우뚝 솟은 봉우리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 주변의 봉우리들과 함께 조망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니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니체 이전의 서양 철학의 높은 봉우리들을 함께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니체의 형이상학과 윤리학 비판의 특이성을 이해하려면 서양 철학에서 큰 흔적을 남기고 있는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그리고 근대의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윤리학에 있어서도 서구 윤리학의 두 가지 조류인 영미권의 공리주의 윤리학과 칸트의 윤리학에 대한 이해, 더불어 훌륭한 삶의 방식에 대한 탐색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학파의 윤리학 그리고 중국에서 공자와 노자의 사상에 대한 공부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니체 이후의 철학자들은 직·간접적으로 모두 니체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니체의 일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변용시켜 자신의 사상적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니체 이후의 철학자들의 작업을 검토하는 것은 ‘니체를 어떻게 독창적으로 독해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 간주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하이데거의 니체해석과 그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하이데거의 사상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한 니체 이해를 넘어서 현대 철학의 주요한 흐름을 파악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철학계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보이는 일군의 프랑스 철학자들, 카뮈의 실존주의적 니체해석, 푸코의 계보학적 방법의 차용 그리고 데리다와 들뢰즈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니체 해석은 모두 각각의 독창성을 갖고 있다.
니체 이전과 이후의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것은 니체라는 봉우리가 가진 특이성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철학사적 맥락에서 니체가 차지하는 위치를 보다 정확히 그리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작업 없이 니체를 공부한다는 것은 험준한 산을 지도와 나침반 없이 오르는 아주 수고스러운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切磋琢磨 - 5.를 대신하여
성실함이 약속되지 않은 계획은 거짓말이다.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성실할 수밖에 없다. 천재가 아니라는 슬픔보다는 거짓말했다는 수치스러움이 내겐 더 불쾌하고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와 끈기로 한다는 말을 믿고 있다. 내가 앞서 약속한 거대한 계획들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나에게 특출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은, 이러한 계획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성실함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