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개인 - 주체철학에 관한 고찰
작업노트 2010/01/27 1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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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토크빌주의에 맞서: 자율성과 독립성
이 점에 있어서 토크빌 고유의 사상을 강조하는 신토크빌주의 사유 방식은, 전통에 대한 개인의 해방과(다시 말해 개인의 독립성의 확립과) 개인의 자율성을 쟁취를 단순하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 오랫동안 펼쳤던 반론이며, 여기서는 조금 다른 형태로 설명함으로써 그 원리를 다시 소개하는 데 만족할 것이다.
내 생각에 신토크빌주의 관점에는 상수(常數)가 있고, 리포베츠키와 고세 작품에서 다양하게 강조된 그 상수는 뒤몽의 저서에 이미 제시되어 있었다. 그 상수는 뒤몽을 통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진 대립, 즉 전통 사회의 ‘전체론적’ 이데올로기와 우리 ‘개인주의’ 문화-여기서 개인은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더 이상 복종하지 않는다-의 대립에 기인한다. 계급적 인간과 평등의 인간의 대립과 일치하는 이 대립에 힘입어 신토크빌주의 분석이 개인을 근대 세계의 최고의 가치로 만들 때, 그것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그 결과 본질적으로 비사회적인 존재로 나타냄으로써 가능해진다. 방금 언급한 뒤몽의 표현에서도 명백해진 독립성이란 가치와 자율상이란 가치의 겹침은 근대성의 유일한 쟁점이 개인성이라는 원리의 증진이었다고 여기게끔 한다. 나는 이러한 이해가 잘못된 것이며, 길을 잃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논리는 확실히 독립성의 논리, 즉 ‘구속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논리이며, 그로 인해 근대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사회들은 루소가 자연 상태의 특징이라 했던 ‘규제 없는 자유’라는 뜻으로 자유를 해석하는 경향을 띤다. 사실 완전한 독립성, 완벽한 자기 충족성은 어떻게 보면 결국 ‘자유로운’ 혹은 ‘자발적인 의지’를 제한할 수있는 모든 규제를 거부한다는 것과 일치할 것이다. 그러한 규제 혹은 제한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이와의 관계라는 문제, 공존에 필요한 조건이라는 문제를 고려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그러한 문제를 고려한다는 것은 개인이 그 자체로 추분하지 않고 존재하기 위해 데카르트 작품에 나오는 실체와 같이 자기 자신만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이미 뜻할 것이다. 이 책 첫장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떠올려 볼 때, 개인주의의 이러한 급진화 가운데 근대성의 한 경향이 있음은 조금도 의심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독서에 따라 사슬처럼 이어져 있는 이러한 개인주의의 가치들 가운데 자율성 또한 원론적인 방법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정당한가? 달리 말해 보자. 독립성의 윤리학은 확실히 자기 충족성이라는, 다시 말해 규제 없는 자유라는 이상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규제 없는 자유가 자율성인가? 아니라고 한다면 신토크빌주의 사조가 근대 이데올로기를 규정한 방식에 극도로 미묘한 변화를 줄 수 밖에 없다. 즉 내가 근대성이 분명 자율성과 독립성에 가치를 부여했음을(근대성은 이중의 가치 부여를 위한 자리였음을)인정한다 해도 이 이중의 가치 부여로 인해 그 둘, 즉 자율성과 독립성이 하나로 여겨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루소가 자신의 《사회계약론》에서 타고난 자유를 규제 없는 자유(완전한 독립성)로 묘사할 때, 그의 관점에서 그것은 정확히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시민의 자유’로서, 루소는 오히려 자유롭게 받아들인 규제들에의 복종에, 달리 말하면 칸트가-이 점에 있어서 칸트는 스스로를 ‘도덕 세계의 뉴턴’(루소를 일컫는다)의 후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의지의 자율성이라고 정확히 이름하게 될 어떤 것에 진정한 자유를 자리매김한다. 그러므로 근대성의 차원 전체에서 볼 때 루소·칸트·피히테의 작품들이 표현하는 최고의 가치는 결코 규제 없는 자유의 가치가 아니다. 원리로 승격된 가치는 자율성의 가치이고, 그것에 대립하는 것은(규제들에 대한 복종으로 이해되는)종속성이 아니라 타율성이다.
사실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 자율성으로서의 자유(본질적으로 근대적인)개념은 어떤 의미에서는 규제들에 대한 종속성, 그러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종속성, 좀더 자세히 말해 (인간의)진정한 자유는 규제 없는 (타고난) 자유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를 자신의 규범과 규칙의 토대 혹은 근원을 만드는 데 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의 토대가 되는 종속성을 가리킨다. 인간의 규칙, 다시 말해 자동 설립된 규칙에 대한 종속성인 자율성이 또한 독립성의 특별한 한 형태임은 어쨌든 사실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해할 수도 있고, 단순하게 자율성을 독립성과 혼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율성은 나에게 법을 강요하게 될 어떤 근원적인 이타성에 비해서만 독립성이다. 요약하면, 독립성의 형태를 띤 자율성은(이것은 법의 자동-설립을 의미한다) 독립성으로 이해되는 그 어떤 모습과도 결코 섞이지 않는다. 자율성의 이상에 있어서, 나는 규범의 규칙을 자유롭게 받아들인다는 조건에서만 그것들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자체에 법과 규제라는 개념을 포함하는 자율성의 가치는 보통법에 복종한다는 사실로써 자아의 제한이라는 원리를 완벽하게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상호 주체성이라는 배경에 주체성을 새기는 것과 사실상 일치하는 자율성의 원리, 그것에 내재하는 관점보다 본질적으로 덜 ‘개인적’인 것은 없다.
그러므로 근대인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 개념을 구성하는 것은 정확히 자율성의 가치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반면 독립성에 대한 과장되고 지나친 가치 부여는, 본질적으로 제한할 수 없고 모든 규범성에서도 면제된 절대적 가치로 자아를 단순히 규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신토크빌주의적 접근이 강조하듯이, 근대 개인주의가 그러한 독립성의 가치에까지 이르렀음을 우리가 인정하면, 그때부터 다음 두 가지 비판은 틀림없이 우리가 인정한 것을 명확히 밝히고 제한할 것이다.
1. 신도크빌주의 사조에서 관례적으로 쓰이는 ‘민주적 개인주의’라는 표현은 결국 자명하지 않다. 반복하건대, 근대 민주주의 개념을 이루는 것은 정확하게 독립성이 아니라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2. 그러한 독립성의 가치는 엄격하게 제한되고 한정된 독립성의 모습인 자율성, 그것의 가치 하락 혹은 와해에 의해서만 가능해졌다. 자유의 근대적인 두 모습은 - 이 둘을 동일시하면 반드시 단죄된다- 과도한 단순화로 인해, 다시 말해 확실히 모호한 근대성에 대한 전체적 해석으로 인해 이렇듯 서로 대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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