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알랭 흐노의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개인 - 주체철학에 관한 고찰>이라는 책이다. 주체의 문제는 내가 앞으로 심화시키고자 하는 문제 중에 하나이다. 알랭 흐노의 재미있는 통찰 중의 하나는 근대의 자유를 두 가지 방식으로 분리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독립성으로서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성으로서 자유이다. 이 두가지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다. 흐노는 명백하게 자율성으로서의 자유가 근대적 자유임을 말하고 있다. 더불어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를 각 자유의 이념에 대한 시조로서 보고 있는데, 데카르트는 자율성으로서의 자유의 시조가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그의 모나드론에서 비롯된 '창문없는 모나드'에 의해서 독립성으로서의 자유의 시조가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알랭 흐노가 의사소통적 주체의 형성을 강조하는 하버마스를 호되게 비판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또 언급할 기회가 있을리라 생각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들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월부터 이렇게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하다. 
개인(주체철학에 관한 고찰)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알랭 르노 (동문선,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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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토크빌주의에 맞서: 자율성과 독립성

이 점에 있어서 토크빌 고유의 사상을 강조하는 신토크빌주의 사유 방식은, 전통에 대한 개인의 해방과(다시 말해 개인의 독립성의 확립과) 개인의 자율성을 쟁취를 단순하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 오랫동안 펼쳤던 반론이며, 여기서는 조금 다른 형태로 설명함으로써 그 원리를 다시 소개하는 데 만족할 것이다.

내 생각에 신토크빌주의 관점에는 상수(常數)가 있고, 리포베츠키와 고세 작품에서 다양하게 강조된 그 상수는 뒤몽의 저서에 이미 제시되어 있었다. 그 상수는 뒤몽을 통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진 대립, 즉 전통 사회의 ‘전체론적’ 이데올로기와 우리 ‘개인주의’ 문화-여기서 개인은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더 이상 복종하지 않는다-의 대립에 기인한다. 계급적 인간과 평등의 인간의 대립과 일치하는 이 대립에 힘입어 신토크빌주의 분석이 개인을 근대 세계의 최고의 가치로 만들 때, 그것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그 결과 본질적으로 비사회적인 존재로 나타냄으로써 가능해진다. 방금 언급한 뒤몽의 표현에서도 명백해진 독립성이란 가치와 자율상이란 가치의 겹침은 근대성의 유일한 쟁점이 개인성이라는 원리의 증진이었다고 여기게끔 한다. 나는 이러한 이해가 잘못된 것이며, 길을 잃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논리는 확실히 독립성의 논리, 즉 ‘구속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논리이며, 그로 인해 근대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사회들은 루소가 자연 상태의 특징이라 했던 ‘규제 없는 자유’라는 뜻으로 자유를 해석하는 경향을 띤다. 사실 완전한 독립성, 완벽한 자기 충족성은 어떻게 보면 결국 ‘자유로운’ 혹은 ‘자발적인 의지’를 제한할 수있는 모든 규제를 거부한다는 것과 일치할 것이다. 그러한 규제 혹은 제한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이와의 관계라는 문제, 공존에 필요한 조건이라는 문제를 고려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그러한 문제를 고려한다는 것은 개인이 그 자체로 추분하지 않고 존재하기 위해 데카르트 작품에 나오는 실체와 같이 자기 자신만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이미 뜻할 것이다. 이 책 첫장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떠올려 볼 때, 개인주의의 이러한 급진화 가운데 근대성의 한 경향이 있음은 조금도 의심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독서에 따라 사슬처럼 이어져 있는 이러한 개인주의의 가치들 가운데 자율성 또한 원론적인 방법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정당한가? 달리 말해 보자. 독립성의 윤리학은 확실히 자기 충족성이라는, 다시 말해 규제 없는 자유라는 이상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규제 없는 자유가 자율성인가? 아니라고 한다면 신토크빌주의 사조가 근대 이데올로기를 규정한 방식에 극도로 미묘한 변화를 줄 수 밖에 없다. 즉 내가 근대성이 분명 자율성과 독립성에 가치를 부여했음을(근대성은 이중의 가치 부여를 위한 자리였음을)인정한다 해도 이 이중의 가치 부여로 인해 그 둘, 즉 자율성과 독립성이 하나로 여겨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루소가 자신의 《사회계약론》에서 타고난 자유를 규제 없는 자유(완전한 독립성)로 묘사할 때, 그의 관점에서 그것은 정확히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시민의 자유’로서, 루소는 오히려 자유롭게 받아들인 규제들에의 복종에, 달리 말하면 칸트가-이 점에 있어서 칸트는 스스로를 ‘도덕 세계의 뉴턴’(루소를 일컫는다)의 후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의지의 자율성이라고 정확히 이름하게 될 어떤 것에 진정한 자유를 자리매김한다. 그러므로 근대성의 차원 전체에서 볼 때 루소·칸트·피히테의 작품들이 표현하는 최고의 가치는 결코 규제 없는 자유의 가치가 아니다. 원리로 승격된 가치는 자율성의 가치이고, 그것에 대립하는 것은(규제들에 대한 복종으로 이해되는)종속성이 아니라 타율성이다.

사실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 자율성으로서의 자유(본질적으로 근대적인)개념은 어떤 의미에서는 규제들에 대한 종속성, 그러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종속성, 좀더 자세히 말해 (인간의)진정한 자유는 규제 없는 (타고난) 자유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를 자신의 규범과 규칙의 토대 혹은 근원을 만드는 데 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의 토대가 되는 종속성을 가리킨다. 인간의 규칙, 다시 말해 자동 설립된 규칙에 대한 종속성인 자율성이 또한 독립성의 특별한 한 형태임은 어쨌든 사실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해할 수도 있고, 단순하게 자율성을 독립성과 혼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율성은 나에게 법을 강요하게 될 어떤 근원적인 이타성에 비해서만 독립성이다. 요약하면, 독립성의 형태를 띤 자율성은(이것은 법의 자동-설립을 의미한다) 독립성으로 이해되는 그 어떤 모습과도 결코 섞이지 않는다. 자율성의 이상에 있어서, 나는 규범의 규칙을 자유롭게 받아들인다는 조건에서만 그것들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자체에 법과 규제라는 개념을 포함하는 자율성의 가치는 보통법에 복종한다는 사실로써 자아의 제한이라는 원리를 완벽하게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상호 주체성이라는 배경에 주체성을 새기는 것과 사실상 일치하는 자율성의 원리, 그것에 내재하는 관점보다 본질적으로 덜 ‘개인적’인 것은 없다.

그러므로 근대인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 개념을 구성하는 것은 정확히 자율성의 가치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반면 독립성에 대한 과장되고 지나친 가치 부여는, 본질적으로 제한할 수 없고 모든 규범성에서도 면제된 절대적 가치로 자아를 단순히 규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신토크빌주의적 접근이 강조하듯이, 근대 개인주의가 그러한 독립성의 가치에까지 이르렀음을 우리가 인정하면, 그때부터 다음 두 가지 비판은 틀림없이 우리가 인정한 것을 명확히 밝히고 제한할 것이다.

1. 신도크빌주의 사조에서 관례적으로 쓰이는 ‘민주적 개인주의’라는 표현은 결국 자명하지 않다. 반복하건대, 근대 민주주의 개념을 이루는 것은 정확하게 독립성이 아니라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2. 그러한 독립성의 가치는 엄격하게 제한되고 한정된 독립성의 모습인 자율성, 그것의 가치 하락 혹은 와해에 의해서만 가능해졌다. 자유의 근대적인 두 모습은 - 이 둘을 동일시하면 반드시 단죄된다- 과도한 단순화로 인해, 다시 말해 확실히 모호한 근대성에 대한 전체적 해석으로 인해 이렇듯 서로 대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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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녹색성장은 친환경적인가

[연속기고](2) 겨울 대중강좌 - 녹색성장, 환경적인가 환경의 적인가 1강①

새움(세미나네트워크)  / 2010년01월15일 12시10분


2010년 새움 겨울 대중 강좌 -녹색 성장, 환경적인가? 환경의 적인가?-, 그 첫번째 강좌로 “MB식 녹색성장은 친환경적인가?”란 주제로 김민정(비정규직 외래강사)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토론하였다. 다음은 각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1.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녹색성장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 63년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60년의 비전이라고 제시했습니다. 녹색 기술과 청정에너지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당면한 에너지 위기와 경제위기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의 열풍을 국내를 비롯해 국외까지 전파한다는 명분으로 올 상반기 중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lobal Green Growth Institute)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린 그로스(green growth)를 한자로 번역한 것이 ‘녹색성장’인데, 환경과 경제가 상충되는 자본주의에서 녹색성장은 물질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녹색과 성장의 만남에 대해 생태주의자인 김종철씨는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까지 비판합니다. 이처럼 환경을 위해 저성장, 제로성장을 주장하는 환경주의자들의 입장과 환경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이명박식 성장주의 입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추상적 수준에서 녹색 및 성장 담론이 논의되는 것이 아닌 구체적 상황에서 두 개념이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이명박 정부에서 말하는 ‘성장’과 ‘녹색’이 뜻하는 바와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각각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녹색성장을 저탄소화와 녹색산업화에 기반을 두고 경제성장력을 배가시키는 신성장개념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저탄소화’라는 것은 경제활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촌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이를테면 ‘수비적인 녹색화’를 의미하고, 그리고 ‘녹색산업화’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에너지 효율 제고,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과 관련된 이른바 녹색 기술 그리고 환경친화적인 비즈니스 모델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공격적인 녹색화’를 말합니다.

녹색 경쟁력은 저탄소와 녹색산업화를 통해 이윤 추구를 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녹색 경쟁력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 공약 ‘7대 강국’ 중 ‘환경강국’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이 성장세 둔화를 감소하고서라도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해야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반면, 이들이 정의한 녹색성장은 환경보호를 성장 능력에 확충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녹색성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비해 ‘성장’에 대해서 무한한 증진 가능성을 염두해 둔 것입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환경에 대해 ‘일정정도’ 저성장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성장의 소극성은 ‘녹색’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장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탄소 배출권 시장이 대표적 사례인데, 탄소 배출권에 대한 표준을 설정한 국가 및 이에 참여하는 기업은 향후 시장을 주도하면서 선도자의 이익인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EU의 경우 강력한 환경 규제와 법제정을 통해 탄소 배출권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저이산화탄소 배출량 차량의 기술을 획득하거나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은 국가적 규제를 통해 일정정도 특별잉여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기간을 보장 받은 셈이지요.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윈회에서는 녹색성장을 지속가능발전(경제발전.사회적 형평.환경보호 통합)의 추상성.광범위성을 정책실현가능성면에서 보완하기 위해, 첫째로 경제성장을 하되, 경제성장의 패턴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 시키자는 개념, 둘째로 환경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제성장 추구, 셋째로 경제성장과 환경파괴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또한,「저탄소 녹색성장법」에서는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기후변화와 환경훼손을 줄이고 청정에너지와 녹색기술의 연구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등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성장이 녹색성장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삼성경제연구소와 이명박 정권의 녹색 성장은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녹색 산업을 강조합니다. 이에 대해 2009년 2월, 환경시민단체의 모임인 한국환경회의는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을 ‘단기 경기부양 중심의 토건사업 활성화’로 규정했습니다. 근거는 무엇일까요? 진정한 ‘녹색성장’이란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성장방식’, 그 이면에 ‘사회의 안정과 통합’, ‘사회적 형평’을 근본 전제로 삼아야 하며, 개발과 성장에 앞서 복지와 민생, 삶의 질을 고려해야 합니다. 4대강 정비사업, 고속철 조기완공 등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부양책은 ‘녹색성장’의 이름에 걸맞지 않으며, 이는 단순한 토목사업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명박식 ‘저탄소 녹색성장’은 ‘토목진흥 프로젝트’를 녹색 가면으로 가리고 갈등의 핵에너지를 ‘청정’으로 분칠하는 ‘녹색세탁’(green wash)이라는 겁니다.

녹색연합의 성명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거짓 녹색에는 인간을 위한 개발과 탐욕만 있지 생태계와 그곳에 살고 있는 뭇 생명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으며, 기존의 경제성장 위주에서 벗어나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자연생태계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경제성장을 해 나가는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복원 산업, 친환경 수송수단 등을 확대 지원하며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데, 현 정부의 정책은 이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을 핵발전소 및 4대강 사업을 포함한 건설업에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진보적 환경운동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인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현하는 데 녹색에너지기술이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향상을 위한 기술개발과 시장 확대가 예산 배정이나 정책이행에 있어 중심이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핵산업을 여전히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중추로 파악하고 지원하는 것이 한 원인이고, 또한 ‘녹색’에 (지역적) 민주주의와 민주적 의사 과정, 사회적 정의 및 평등 실현 등을 포함하고 있는 진보 진영과 달리 이명박 정권의 녹색에는 이러한 항목들이 배제되거나 고려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이명박 정권식 녹색성장의 본질

이명박 정권은 표면적으로 녹색성장을 이야기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반환경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2008년 9.19 주택정책인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주택 건설방안’은 부동산 과잉 투자와 수도권 과밀 집중 등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것보다 오히려 공급확대에 의해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었으며, 무려 100㎢의 그린벨트를 해제할 주택 공급 계획은 심각한 수도권 과밀 집중과 녹지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2009년 1.6 녹색뉴딜사업의 핵심은 한반도 대운하의 다른 이름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이고 96만개의 일자리 창출도 96%가 건설 및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각종 규제를 향후 2년간 집행하지 않는 일괄적 ‘규제유예’도 큰 문제입니다. ‘수도권규제’와 ‘자연보전권역’을 풀었고 ‘상수원공장입지규제’도 완화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발맞춰 환경부는 국립공원의 자연보존지구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고 이와 더불어 86개의 기존 환경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명박식 녹색성장의 핵심은 재생가능한 에너지가 아닌 핵산업입니다. 지식경제부는 2012년에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지급하던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아예 폐기하겠다고 밝혔는데, 발전차약지원제도는 공급한 전기의 전력거래 가격이 산업자원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기준가격보다 낮은 경우, 기준가격과 전력거래가격과의 차액을 정부가 지원해줌으로서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를 위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정부는 핵발전소 설비 비중을 2007년 26%에서 2030년까지 41%로 늘리고 발전 비중도 59%까지 늘릴 계획을 발표하였고, 이러한 정부의 계획을 실행하려면 추가로 9-13기의 핵발전소가 필요합니다. 결국 2030년까지 한국은 40여 개의 핵발전소를 보유할 예정에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법적으로 뒷받침해줄「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의 입법 과정을 살펴보면,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의 반환경적이고 반민주적인 모습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입법과정 예고안을 살펴보았을 때 녹색성장기본법 제49조 2항은 지속가능한 물관리의 주요 내용으로 “국가는 주요 하천과 유역의 물길을 자연친화적으로 보전·복원·정비하고 물을 저류·저장하며 수질 및 수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친환경적인 시설과 수변공간을 확충함으로써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물부족 및 수질악화와 수생태계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수변 생태문화도시 조성과 생태관광을 활성화하여 저탄소 녹색국토의 구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 항은 ‘4대강 정비사업’의 내용이 법률화 된 것입니다.

제46조는 “정부는 석유의존도 완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수출산업으로서의 고부가가치, 국제동향, 원전 및 원전폐기물의 입지 확보, 국민의 수용성 등을 고려하여 청정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 발전비율의 적정 목표를 설정하고 원전의 안전한 운영, 원전폐기물의 안전처리, 기술개발, 발전 및 비발전 분야의 관련기업육성, 인력양성, 수출 진흥 등 종합적인 방안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는 방사능 누출 및 사고로 인한 위험성이 높으며 무엇보다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로 여전히 위험성과 사회적 갈등을 가져올수 있는 에너지인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핵발전 산업 육성과 함께 수출산업화 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며, UAE와의 수주 계약은 바로 좋은 사례입니다.

제49조 3항에서는 지속가능한 물관리를 위해 “국가는 각종 용수의 생산·공급, 수질오염 예방·처리, 하수·폐수의 이송·처리 및 재이용 등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산업을 적극 육성·지원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물 사유화의 기본 방향인, 수돗물과 수도시설의 기업 참여를 확대시키려는 정책임을 보여줍니다. 제34조 2항에서 “정부는 국내·외 규제로 인한 기업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하여 실태조사를 하거나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규제합리화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일련의 규제완화와 동일합니다.

12월 29일,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로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포장 국가비전’인 ‘저탄소 녹색성장’을 뒷받침할 녹색성장기본법은 ‘녹색에 대한 철학의 결여‘, ’일방적 소통과 파행 거듭‘, 사회적 반발과 혼란 야기’, ‘환경과 사회형평성 부재’라는 문제점을 풀지 못한 채 ‘성장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탄생하게 되었다는게 환경단체의 평가입니다. 하지만 녹색성장기본법안 예고안 내, 노골적으로 명시되었던 ‘원자력 산업 육성’과 ‘4대강 개발사업’지원 등에 관한 조항은 삭제되었습니다.

3. 진보진영의 반응 및 평가

진보진영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내세우는 녹색성장은 불도저식 성장이며 녹색 세탁이라고 평가하며, 결국 토건 경제를 위한 겉포장, 위장술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조명래 교수는 경제 중심 성장 정책을 녹색으로 포장하여 선진 정책인 양 둔갑시키는 동시에 생태환경을 경제적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삼고자하는 경제성장 전략이 녹색성장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요.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녹색을 외쳐도 그 실체는 토건국가이며 토건국가와 녹색성장은 공존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더러운 자본주의는 깨끗한 자본주의보다 더 낫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는 녹색성장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MB식 녹색성장은 자본주의 내에서 ‘허용 가능’한 환경 보호는 수용가능하다는 것이며, 이는 한편으론 날로 심각해져 가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진보적 사회운동 단체들의 환경적 요구를 ‘일정정도’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윤 추구의 경쟁 환경에 변화를 가져온 전 지구적 환경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 목표나 기업의 성장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녹색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기업과 국가의 비전으로 녹색성장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중요한 것은 비전을 실현할 시장의 유무와 경쟁력의 여부인데요. 이들은 고부가 가치의 창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으로 그린오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삼성경제 연구원이 보고서에 따르면 녹색성장의 부상 배경으로 우선 기후변화 관련 규제 논의의 본격화와 에너지원 고갈에 대한 우려 등을 꼽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탄소배출권시장, 신재생에너지 시장 등 녹색 시장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는 2007년 640억 달러이지만 2010년에는 1,500억 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며, 또한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수소연로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규모도 2017년 2,545억 달러로 2007년(773억 달러) 대비 3배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 예상한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급격히 성장하는 녹색 산업의 신성장 동력화는 2009년 1월 미래기획위원회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신성장동력 비전 및 발전전략》에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정부는 기업과 공동으로 17개의 신성장 동력을 선정하여 녹색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낡은 사고방식이고 녹색 산업화란 녹색 기술, 환경 친화적 경영 모델을 통해 신 시장을 창출해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환경 보호를 통해 경제 성장능력을 확충하는 것으로 저탄소와 녹색산업이 ‘원만하게’ 결합될 경우,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녹색성장은 경제 성장과 환경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기회를 선점하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이를 더 적확하게 지적하면 ‘국익’과 ‘환경보호’를 기업의 ‘이윤 창출’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은 ‘규제법’이 아닌 ‘지원법’인 것은 아주 명백합니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의 법적 성격은 녹색경제, 녹색기술, 녹색산업을 범국가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지원 위주의 법이라는 점을 녹색성장위원회의 보고서 역시 인정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기업의 공해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규제하는 방식이 아닌 지원하는 방식은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녹색성장으로 부분적인 영역에서는 환경이 좋아질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지구는 온난화로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높고, 기업의 이윤 창출을 이끌어 낼 수는 있겠지만 전 지구적 환경은 더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내에서 이윤 경쟁이 허용 가능한 것만을 추진하는 MB식 녹색성장의 핵심이고, 4대강 사업(일명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녹색성장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운동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환경문제를 연구하는 버킷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환경 위기에는 두 형 태가 있습니다. 첫 번째 형태는 자본의 물질 요구와 원료 생산의 자연적 조건의 불균형에 기초한 자본축적의 위기인데, 마르크스의 가치론에서는 추가적인 노동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은 자연의 사용가치는 자본에 의해 무상으로 전유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상으로 전유되는 자연 즉, 원재료와 보조재료 등의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이 추가적인 노동 투입을 요구하게 압박되어 불변자본의 가격 상승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축적 메카니즘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두 번째 형태는 인간 생존을 위한 자연 조건의 지속적인 악화라는 측면에서의 사회적 위기입니다. 이런 지적을 적용해 본다면,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녹색성장으로 자본축적의 위기를 일정정도 벗어 날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인간 생존을 위한 자연 조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식 녹색성장은 형용모순이라고 봅니다.

4. 결론

녹색성장은 단지 기업의 이윤 추구 방식을 녹색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녹색성장은 인간 사회에서 인간-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을 통한 인간-자연간의 단절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합니다. “인간을 자연에서 소외도록 한 것은 사회 내의 인간 간의 소외가 원인이며 모든 생태학적 문제는 사회문제에 뿌리를 가진다”라는 북친의 주장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고, 이런 의미에서 환경‘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관계에서의 착취와 인간 사회의 불평등한 인간관계, 즉 환경 불평등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감면해 준 부자들의 세금 75조 원은, 이명박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신ㆍ재생에너지에 투자 하겠다는 총 금액의 25배에 해당합니다. 부자들의 이윤을 지키려고 서슴없이 지갑을 열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깝다는 것이지요. 환경운동연합은 2009년 올해의 환경 뉴스를 중 부자유친(富父子有親)을 선정하였습니다. ‘부자유친’은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의 부자감세 정책으로 서민 부담을 증가시키는 현상과 2010년 예산에서 서민예산, 복지예산 등을 삭감하고 오로지 4대강 사업 등의 토건 예산으로만 밀어 붙이고 있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진보적 환경 대안으로 토건적 녹색 파시즘을 막는 녹색주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녹색 권리 찾기 운동’이 제기되거나, 녹색경제동맹 등이 제안된 바가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진보진영의 대안을 통해 이명박식 녹색성장이 아닌 우리의 대안을 모색하여 아래로부터의 대중들의 힘을 기반으로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P.S 세움에서 진행중인 겨울 대중강좌 연재기사를 옮겨왔다. 참세상에서 기사 원본을 볼 수 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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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관련한 책들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특별히 관심을 두는 분야는 시간과 공간 개념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상대성 이론에 관한 책을 읽어보려다가 집어든 책이 <로버트 게로치 교수의 물리학 강의>인데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역자인 김재영씨가 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상대성 이론>이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론적인 수준에서 쟁점을 찾고자 하는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유용한 글이다. 이 부분에서 흥미있게 읽은 부분을 옮겨둔다.
 
물리학 강의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로버트 게로치 (휴머니스트,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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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간'이라는 용어에서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개념은, 사실 뉴턴이 제시한 절대 공간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우주는 좌우, 앞뒤, 위아래로 무한히 펼쳐진 허공 속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별들이 다른 별들의 중력을 느끼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허공과 별"의 우주이다. 뉴턴은 "그 본성상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지 않으며, 항상 변함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절대 공간"을 상정하는데, 그는 공간을 질량을 갖는 점들이 움직이는 '무대' 또는 '그릇'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견해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해 근대 프랑스 유물론에 공통되는 선험적 시간-공간론의 표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데카르트는 물질을 "공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물질이 곧 공간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즉 진공은 인정할 수 없었고, 그 대신 공간은 곧 충만이라고 주장해야 했다. 그러나 뉴턴에게는 물질과 공간은 같지 않다. 공간 속에 물질이 들어 잇으며, 가장 이상화된 경우로 전혀 부치를 차지하지 않는 물질(질점)을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다. 물질을 대변해주는 것은 오직 '물질의 양'일 뿐이며, 물질은 공간 속에 들어 있는 무엇이다.(128-129)

공간에 대한 관념에 크게 실체론적인 관점과 관계론적인 관점이 있듯이, 시간에 대해서도 관계론과 실체론을 모두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으로 운동을 측정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은 시간에 대한 표준 정의로 여겨져왔다. 관계론적 시간 개념에서 시간은 오직 '먼저'와 '나중'을 가름하는 기준으로만 규정된다.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이라는 개념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에 반해 실체론적 시간 개념은 물질이 존재하든 안하든 시간은 태초부터 영원히 변함없이 흐른다는 믿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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